연합감리교회 디크네스인 클라라 에스터(Clara Ester)는 말한다, “저는 오직 사랑만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아주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만 실제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에스터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에게서 이 같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사랑하는 일에는 엄청난 노력과 힘이 필요합니다,” 에스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길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걷길 원하시는 길이고, 킹 박사가 살고자 했던 삶이었습니다.”
사랑, 정의, 비폭력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킹을 회고하면서 에스터가 말한다. “킹 목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었던 문제와 염려들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해결 하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그가 택한 방식은 사랑과 비폭력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에스터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센테너리감리교회(Centenary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자랐고, 그 당시에는 흑인민권운동의 지도자였던 제임스 로슨 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에스터의 신앙은 킹 목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킹 목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 그러셨던 것처럼 불의한 일에 맞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설명한다. “소외된 이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시간을 보내셨던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곁에 두기 싫어했던 이들 곁에 계셨지요. 킹 박사도 소외된 이들의 대변자 역할을 했고 그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구조적인 부분을 바꾸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시간이 걸린다
에스터가 항상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제 안에 엄청난 증오가 있었습니다,” 에스터의 고백이다. 사랑과 비폭력은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대학교 3학년 때 양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19세나 20세의 젊은 저는 모든 것이 가장 신속하게 이뤄지길 원했습니다,” 그녀는 회고한다.
1968년 4월 4일 저녁 모든 것이 바뀌었다. 에스터가 로레인 모텔에 도착했을 때, 킹 목사는 그의 방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총성이 울렸고, 킹 목사의 암살은 그녀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발코니에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전날 밤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한 민족으로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비폭력 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을 조금씩 더 알게 되었지요. ‘당신 안에 있는 증오를 바꿔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제게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은 제게 정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사명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생각하며 에스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다. 누가복음 10:25~37에 나오는 강도를 만나 길가에 누워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두 명의 종교 지도자가 먼저 다가온다. 예수님께 직접 이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은 분명 이들이 뭔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다친 사람을 피해 길을 건너간다. 세 번째로 그곳에 온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그 누구도 이 사마리아인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요한복음은 말씀한다, “...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한복음 4:9).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 사마리아인은 그 낯선 사람을 돕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비유를 끝맺으신 예수님은 이야기를 들고 있던 이들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같이 하라.” 킹 목사가 죽던 날, 그곳 발코니에서 에스터도 같은 부르심을 들었다.
“킹 목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제게 주신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밟고 지나가서도 안 되고 길 반대편 가장자리로 걸어가서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사람들이 있다면, 제게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우리가 모두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모두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곳보다 더 훌륭한 사회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섬김의 삶
킹 목사의 암살 직후, 에스터는 대학교를 그만뒀다. 그녀는 미시시피주 막스로 가서 킹 목사가 기획했던 가난한 자들의 캠페인(Poor People’s Campaign)이라 불렸던, 미시시피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행진 행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막스가 출발지로 선택된 것은 그곳이 “가장 가난한 주의 가장 가난한 카운티에 위치한 가장 가난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미시시피 스토리).
이후 에스터는 학교로 돌아와 학위를 마쳤다. 그녀는 연합감리교회의 디크네스로 섬기며 평생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일했다. 그녀는 2006년, 연합감리교회 여성회가 후원하는 앨라배마주 모빌에 위치한 두마스 웨슬리 지역 센터(Dumas Wesley Community Center)의 총재직을 끝으로 사역 일선에서 은퇴했다.
로레인 모텔에서의 그날은 그녀의 향후 사역의 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분은 총알이 그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사랑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싸웠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은 온통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른 이들의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사람의 삶에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에스터가 말한다. “킹 목사를 만난 것은 제 삶의 전환점이었고, 제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향성과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조 이오비노는 연합감리교회 공보부의 교인 자료 담당 부서의 책임자입니다.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세요.
이 이야기의 영문 기사는 2019년 1월 20일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