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내가 기도해야 하는 만큼 기도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씨름해 왔다. 이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나를 덮는 죄책감의 구름이며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의 커다란 원인 중 하나는 기도에 관한 내 관점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열렬하고 헌신적인 기도 생활의 본을 보여주셨다. 두 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셨고, 아버지는 잠들지 못하는 밤에도 교회로 가 기도하셨다. 교회로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집안의 사무 공간에서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기도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것이 기도에 관해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우리 한국인들은 “기도의 용사”의 전형적인 예들이니까. 

한인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실천하는 것 중에 새벽기도(SaeByeok Gido)라는 것이 있다. 대충 영어로 번역하면 Dawn Prayer(동틀 때 기도) 정도가 되겠다. 성도들은 아침 5시나 6시에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는다. 보통 목회자들이 전하는 짧은 설교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보통 한 시간 정도) 통성 기도(tongsuh gido)에 할애된다. 영어로 풀자면 “모두가 함께 소리를 내는 기도”라고 보면 된다. 

소리 내 우는 사람도 있고, 가슴을 치는 사람도 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문자 그대로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기도에 쏟아붓는다. 스포츠에 쓰이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운동장(예배당)에 쏟아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식 (또 우리 부모님의) 기도의 열정이나 간절함에 비하면, 내 기도는 기도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재빨리 깨달은 것 또 한 가지는 내게는 그 정도로 기도할 열정이나 간절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는 기도를 멈췄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내 더 큰 죄책감이 되어 내게 돌아왔고, 이는 내가 기도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했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 많은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져왔다. 나는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오히려 더 멀어졌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잘못된” 기도의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옳은” 방식의 기도도 없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부모가 되고 나서 이 점을 더 분명히 깨달았다. 내 아들이 나와 시간을 보내는 일에는 “잘못된” 방법도 “옳은”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아들 곁에 있고 싶을 뿐이다. 한 가지를 보태면, 아들이 나와 소통하는 “잘못된” 혹은 “옳은”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아들은 12살이며 자폐 스펙트럼에 있다. 그는 4살 어린이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며, 나는 그가 12살 어린이처럼 내게 말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모든 문장에 적절한 문법이나 단어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시고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신다. 완벽한 기도의 형식이나 격조 있는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말을 더듬어도 좋고, 흐느껴 울어도 좋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어도 괜찮다(나는 하나님께서 진정 신경 쓰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저 하나님께 말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실 것이다. 

기도의 훈련을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시작했다. 첫째는 기도 일기 쓰기이다. 하나님을 향한 내 생각을 그저 써 보는 것이다. 기뻤던 일, 내가 드리는 찬송, 내 걱정거리와 불안함, 소망, 아무 것이든 또 어떤 것이든 괜찮다.

두 번째는 부모님이나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처럼 몇 시간씩 하는 기도 대신 호흡 기도를 발견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짧은 기도를 하고, 내쉬면서 또 짧은 기도를 드린다. 숨을 들이쉬면서 “주님의 손에”라고 말하고, 내쉬면서 “내 영혼을 맡깁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은 마음을 준다. 내 신경과 불안을 진정시킨다. 

나는 주로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기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기도하시는 대로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도 한다. 물론 아버지만큼 자주 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괜찮다. 이 같은 방식의 기도는 아버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니까. 

우리의 신앙 여정과 우리가 사용하는 영성 훈련법들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내게는 맞는 기도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식(이나 그로 인한 죄책감)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매일의 삶에서 계속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옳은 방식으로 기도하고 있는가?”에 함몰되지 말라. 그저 기도하라. 곧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조셉 유는 When the Saints Go Flying in(성도가 날아들 ) 저자입니다. 그는 서부 해안 출신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휴스턴의 모자이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블로그 josephyoo.com에서 그가 많은 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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