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를 걷고 있었던 나와 아내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죄 목록이 적힌 대형 팻말을 든 한 남자의 습격을 당했다. “당신들은 모두 지옥에 갑니다.” 그가 외쳤다. “회개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파티에서 모두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일 것 같았다.
그는 지옥에 대한 공포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목록에 있는 일들을 그만두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 경고하려 했다. 뭐 그런 식이었다.
두려움은 훌륭한 동기 부여 수단이다. 행동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환상적인 도구다.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나는 우리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방법 — 즉 하나님을 믿게 하는 방법이야말로 그들이 교회에 계속 머물게 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만약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된다면, 교회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계속 줘야 할 것이다. 즐거움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된다면, 계속 즐겁게 해줘야 교회에 머물 것이고, 겁을 주어 교회에 데려오면 계속 겁을 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에 기반한 관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는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요한일서 4:18a). 두려움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 수 있지만,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울은 심지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물었다. (로마서 2:4).
팻말을 든 열정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걸으면서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은혜가 먼저인가, 회개가 먼저인가?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대답을 주신다. 작은 아들은 가정을 망치고 자신의 인생까지 망친 후,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종으로 삼아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만들어 낸 지금 이 상황보다는 아버지 집에서 종으로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서 그는 반성문(?)을 작성했고, 아마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와 마주쳤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대로 말씀드리기 위해 그 반성문을 연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에 따르면 아버지는 매일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수평선 너머로 오늘 아들이 돌아오게 될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본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제 멋대로인 아들에게 달려갔다. 아들이 연습한 반성문을 낭송하려 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중간에 끊고 아버지만이 가진 넓은 가슴으로 아들을 안아준다.
회개를 마치기 전에 은혜가 어린 아들을 향해 달려왔다.
은혜가 회개보다 먼저다.
은혜로 돌아가기
“회개”(또는 회개하다)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나도 안다. 이 단어는 은혜 가득한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고 종종 위협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회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슈바”는 “돌아오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회개할 때 “돌이키다 혹은 불태우다”는 극적인 분위기로 꼭 회개해야 할 필요는 없다. 회개는 단순히 우리가 원래 살아야 했던 삶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이 항상 원하셨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며, 집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훼손한 것, 즉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형벌을 피하기 위해 회개하지 않는다. 은혜를 경험한 그 순간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졌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회개한다. 회개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은혜는 우리를 회복시킨다.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영원히 변화되며, 그 경험과 만남의 흔적이 영원히 남는다.
은혜는 방탕하고 제 멋대로인 아들을 마땅한 상속자요 아들로 회복시킨다. 그는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축하를 받는다. 아버지의 은혜는 그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서진 이미지를 다 고쳐준다. 은혜는 그에게 새로운 시작, 즉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을 준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인도할 때,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우리는 영원히 변화된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준다. 은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본 그것을 우리는 다시는 잊을 수 없다.
조셉 유는 When the Saints Go Flying in(성도가 날아들 때)의 저자입니다. 그는 서부 해안 출신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휴스턴의 모자이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블로그 josephyoo.com에서 그가 쓴 더 많은 글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