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신앙인들이 의심으로 할 수 있는 일

오하이오주 카이어호거국립공원의 폭포. 사진 제공: 케이 패노벡,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오하이오주 카이어호거국립공원의 폭포. 사진 제공: 케이 패노벡,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 십자가 위 예수님의 이 같은 고통스러운 절규는 우리의 영혼을 관통하는 것만 같다. 많은 이들이 버림받은 느낌, 외로움, 두려움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의사로부터 받은 충격적 진단. 배우자의 불륜 사실 고백. 실직. 자연재해로 집이 파괴되는 일 가운데 우리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말씀은 의심 가운데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평안을 준다. 사진 제공: 제임스 티소, 위키미디어 공용.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말씀은 의심 가운데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평안을 준다. 사진 제공: 제임스 티소, 위키미디어 공용.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도 그렇게 느끼셨다.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겠지만, 사람의 아들로서는 버림받았다고 느끼셨다. 단 몇 초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오직 우리를 위해 느끼신 감정이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 중에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로마서 8:28의 말씀을 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 영혼의 어두운 밤 가운데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믿기 위해 분투한다. 

치유를 바라며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아버지의 말이 이 같은 순간에 잘 들어맞는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그에게 물으시자, 아버지는 대답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마가복음 9:24).

의심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일부분이다. 신앙인들은, 심지어 강하고 깊은 믿음의 소유자들 또한 의심의 순간들을 거쳤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는 의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믿기 전에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부활 이후 한 무리를 산에서 만나신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말씀한다(마태복음 28:17). 

또 다른 제자였던 베드로는 배 밖으로 나와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걸었다. 위대한 믿음을 보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를 의식하는 순간 의심하기 시작했고 물에 빠졌다. 

존 웨슬리의 의심

연합감리교인들은 동기부여나 영감을 얻기 위해 감리교 운동을 시작했던 존 웨슬리를 의지하기도 한다. 이 겁낼 줄 모르는 전도자조차도 의심의 시기를 겪었다. 

그는 1738년 3월,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불과 몇 주 전에도 의심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그의 일기에 기록했다. 웨슬리는 이렇게 썼다, “나는 불신에 대해 분명히 확신했다… 그것은 즉시 내 마음에 들어왔다. ‘설교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나는 (피터) 뵐러에게 내가 설교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결코 아닙니다… 믿음이 생길 때까지 믿음에 관해 설교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을 갖고 다시 믿음에 관해 설교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믿음을 설교할” 강단이 허락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의심과 고통의 삶을 지나는 동안 여전히 “믿음을 구하며 기도할” 수 있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본을 따른다. 

깊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의 시간에도, 예수님은 적어도 아마 수년 전 외우셨던 기도를 되뇌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구절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로, 고통의 순간을 위해 쓰인 기도였다. 

그곳에 가 본 사람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피치트리로드연합감리교회의 목회상담 서비스 책임자로 일하는 로널드 그리어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절규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님께서 그 순간에 느끼셨던 고통은 분명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을 겁니다,” 그는 말한다. “이분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통 속에 있는 것 또 깊은 감정적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힘든 시기에 대단히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리어 목사는 상담자로서 또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이것을 이해한다. 그리어와 아내는 그들의 두 살 난 아들의 비극적 죽음 이후 교회 공동체와 그 슬픔을 나눴다. 그는 후일 고통 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나눴고 더 많은 이들이 그가 당했던 가슴 아픈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어는 상담을 위해 그를 찾은 이들에 관한 어떤 특별한 점을 깨닫게 되었다. 

“상담을 위해 저를 찾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특별히 자녀의 죽음을 겪은 이들입니다,” 그가 말했다. 내담자 중 다수가 “같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을 만나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일을 겪지 않으면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 테니까요”라고 말하면서 특별히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로널드 그리어 목사는 목회상담자로서 또 비극적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의심과 고민을 이해하고 있다. 사진 제공: 로널드 그리어 목사.
로널드 그리어 목사는 목회상담자로서 또 비극적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의심과 고민을 이해하고 있다. 사진 제공: 로널드 그리어 목사.

사람들이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해하신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슬픔과 고통, 외로움을 온전히 체험하셨다. 

믿음을 빌려오기 

우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치유를 가져다주는 일이며 우리 마음을 채운 의심 가운데 그들의 믿음을 빌려 사용할 기회를 준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집 지붕을 뚫고 달아 내려진 사람을 치료하신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가와 누가 모두 주목할만한 사실을 남겨 놓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셨다(마가복음 2:5, 누가복음 5:20).

예수님을 놀라게 했던 것은 들것에 누워있던 한 사람의 믿음이 아니었다. 주님을 매료시켰던 것은 그 환자와 친구들의 일치된 믿음이었다. 

의심이 찾아올 때, 다른 이들의 믿음을 빌려본다면 어떨까. 내가 겪는 어려움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나누고 그들의 믿음으로 내 마음의 의심을 덮어보라. 예수님의 발 앞으로 나를 이끌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임마누엘은 예수님께 붙여진 메시아적 칭호다. 성탄 절기에는 열심히 노래하다가도 다른 시기가 되면 거의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복음 1:23)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중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표징이다. 

병원에서, 재판정에서, 장례식장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의 투쟁과 문제와 잠 못 드는 밤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우리의 믿음과 의심 가운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믿음의 사람들도 의심의 시기를 지나간다. 그래도 괜찮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거기 계셨으며 우리가 의심의 터널을 지나기까지 우리와 함께 걸으실 것이다.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

  • 내가 고민하는 것에 관해 하나님께서 분명한 답을 주실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여쭤보겠는가? 
  • 의심하는 것은 죄인가? 도움이 될 수는 없는가? 
  • 기사의 저자는,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의심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믿음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유년 시절에 배웠거나 성경에서 읽었거나 다른 책에서 발견한 기도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다고 혹은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의 인물들이나 기독교 영웅들도 의심했었다는 사실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다고 혹은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 의심을 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찾아보자.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 
  • 의심을 품을 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의 믿음을 빌려 사용할 수 있을까? 
  • 교회에서 의심에 대해 더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이오비노는 연합감리교회 공보부의 교인 자료 담당 부서의 책임자입니다.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세요. 

이 이야기의 영문 기사는 2015년 3월 27일에 처음 게시되었고, 2023년 3월 3일에 수정 재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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