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금식, 허기, 계시

사순절: 금식, 허기, 계시
사순절: 금식, 허기, 계시

“저는 사순절 동안 제 형제자매들에게 착하게 대하는 것을 포기할 거예요,” 한 중고등부 학생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저 친구가 착하게 대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저는 숙제하는 것을 포기할게요,” 다른 학생이 거들었다. “오, 저는 부모님께 사순절 동안 집안일 하는 것을 포기할 거라고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거라고 교회에서 배웠으니까요.” 

그제야 나는 내가 아주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가 사순 절기에 무언가 포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일시적 포기나 금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번도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금식이나 포기는 기껏해야 단기간의 다이어트 계획처럼 취급되었다. “초콜릿 먹지 않기” “탄산음료 끊기” “커피 마시지 않기”처럼 말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내가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했던 그 순간은 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금식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을 하지 않는 희생양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사순절 동안 무언가를 포기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허기와 마주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자기 자신이 허기와 마주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 허기가 제때 해결되지 않을 때 불평한다. 우리는 쉽고 빠르게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다. 또 내가 여기서 말하는 허기는 단지 음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시청하는 비디오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짜증을 내는 것이 우리 아닌가. 아마존 프라임이 제공하는 이틀 배송은 종종 그다지 빠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5분 전에 스타벅스에 모바일 주문을 넣어 놓고 가게에 도착해서 여전히 준비 중인 것을 보면 당황하지 않는가. 

사순의 절기는 우리의 허기와 마주할 기회를 준다. 무언가 포기하는 일을 통해 허기가 우리에 관해 보여주는 어떤 것을 배울 기회이다. 허기 이면에 감춰진 진짜 허기는 무엇인가? 우리는 묻게 된다. 

또한 내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 인해 주려있을 때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어디에 계시는가? 

이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혹은 돈인가? 명성이나 인기인가? 관계인가? 

허기를 연습하기

허기가 당신 스스로에 관해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관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은 내가 여러 번의 사순절을 지내며 실천했던 그래서 나 스스로에 관해 또 하나님에 관해 알게 해 주었던 영성 훈련법들이다. 

침묵

이번 사순절, 나는 매일 15분의 침묵을 따로 떼어 놓았다. 

조용히 있는 것은 내게는 매우 쉬운 일이다(내향적 성격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어떤 의도적 소음도 제거하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더 어려웠다. 나는 음악을 듣거나 말하지 않고 15분 동안 걸었다. 몇 분이 지나자 나 스스로에게 크게 말을 해서라도 내 주변에 어떤 소음을 만들고자 하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침묵 속에 있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지금까지 이 짧은 의도적 침묵의 시간이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일이었다. 때때로 내가 내는 출력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입력을 놓칠 때가 많은 것 같다. 가만히 조용히 있는 일은 하나님의 고요하고 세미한 목소리를 듣는 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준다. 

금식

물론 음식을 금한 적도 있었다. 어떤 종류의 미디어를 금한 적도 있었다. 커피와 같은 특정 음식을 금한 적도 있었다. 금식을 통해 분별하게 된 가장 쉬운 진리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것으로 괄호 안을 채워보라. 

커피를 끊은 기간 동안 카페인 금단 현상으로 두통이 내 머릿속에서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두통을 앓으며 내가 커피에 더 의존하는지 아니면 기도에 더 의존하는지 자문했다. (왜 커피와 기도에 함께 의존할 수는 없는가…?) 육체적 허기는 내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쉽게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또 그분을 통해서만 온전해진다. 

기도

대부분의 사순절 기간 나는 어떤 것을 내 삶에서 빼는 것보다 영성 훈련법을 “더하는” 일에 더 집중했다. 몇 년 동안은 의도적인 기도의 시간을 추가했다. 앞서 언급한 침묵의 시간과 비슷했지만, 소음은 그대로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보통 그 시간과 장소에서 하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스크롤 하거나 TV에서 무언가 보는 대신, 나는 그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의도적 기도의 시간은 내가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항상 “즐거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시간은 내 중심을 다시 점검하게 하고 내 삶의 우선순위들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다. 

의도적인/임의적인 친절 행위

작년에는 매일 누군가를 축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이클 프로스트는 세상을 놀라게 하라(Surprise the World)는 그의 책에서 “다른 사람의 팔에 힘을 더하는 것”으로 축복하는 것의 의미를 설명했다. 우리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들의 삶을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들이 조금 더 숨 쉴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의 하루에 작은 복이 되기로 했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도 하고, 낯선 사람의 커피 값을 지불하기도 하고,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가고 난 뒤에 이웃의 쓰레기통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도 하고, 격려와 인정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해 보았고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일을 해 보았다. 테레사 수녀의 명언인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라”의 실천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일까?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언제나 베풀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올해 사순절 실천을 통해 여러분이 발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조셉 유는 When the Saints Go Flying in(성도가 날아들 ) 저자입니다. 그는 서부 해안 출신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휴스턴의 모자이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블로그josephyoo.com에서 그가 많은 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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