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성탄 이야기를 알고, 매년 대강절 예배와 성탄 전야 예배에 참석했고, 수많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거의 모든 크리스마스 영화와 특별판을 보았다. 우리 연합감리교인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꽤 많이 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더 배울 수 있는 것은 항상 존재한다. 크리스마스에 관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들을 모아보았다.
존 웨슬리는 성탄 설교를 한 편도 출판하지 않았다.
존 웨슬리의 성탄 설교를 검색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그는 단 한편도 출판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아마 청교도들이 1600년대 중반 영국에서 힘을 얻으면서 크리스마스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당국은 크리스마스 축하 금지령을 통과시켰었다. 어떤 마을은 성탄 전야에 소식을 전하는 이들을 보내 “성탄 축하 금지! 성탄 축하 금지!”라고 외치게 하기도 했었다.
크리스마스는 18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영국에서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독일계 출신이었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는 영국 내 크리스마스트리 전통을 대중화한 장본인들이다. 1843년에 출판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의 유행도 이 명절의 부활을 설명하는 한 요인이다.
존 웨슬리의 영국 내 감리교 부흥 운동은 크리스마스가 금해졌던 200년의 기간 중간에 시작되었다. 그 결과로 감리교인들이 모여 특별한 예배를 드렸다는 것 이외에는 성탄을 지켰다는 그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않다.
한편 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인들 중 상당수가 크리스마스 축하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청교도인들이었다. 1600년대 보스턴 당국은 크리스마스에 일하지 않는 이들에게 5실링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187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크리스마스는 미국의 국경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감리교 설교자들이 1784년 감리교회(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초대 총회 날짜로 크리스마스 전야를 택한 이유가 단지 그날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후 감리교인들은 이 회의를 크리스마스 총회로 부르게 된다.
찰스 웨슬리는 유명한 성탄 찬송가를 썼다.
존 웨슬리는 성탄에 관한 설교를 단 한 편도 출판하지 않았지만, 찬송 작사가였던 동생 찰스는 매우 초기부터 성탄에 관한 찬송곡들을 썼다. 최초의 감리교 찬송가집이었던, 찬송과 거룩한 시들(Hymns and Sacred Poems, 1739년 출판)은 찰스가 지은 “천사 찬송하기를(Hymn for Christmas-Day)”을 수록하고 있다. 1절의 영문 가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들으라 온 하늘이 진동하는 소리를, ‘왕의 왕께 영광을 돌리라.’” 이후 한 감리교 설교자에 의해 1절 가사가 우리가 더 잘 아는 것으로 바뀌었다. “들으라! 천사들의 노랫소리를(한국어 찬송은, “천사 찬송하기를”로 옮겼다).”
이후에 출판된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찬송곡들(Hymn for the Nativity of our Lord)에서 찰스 웨슬리는 이 절기를 위한 18곡의 찬송을 더 수록하였다. 그중 한 곡이 우리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오랫동안 기다리던”이라는 찬송가이다. 연합감리교 찬송가에 수록된 이 곡의 가사는 찰스가 1745년에 쓴 것과 대동소이하다.
어떤 이들은 찰스가 그의 형 존 웨슬리보다 성탄을 더 좋아했던 이유를 그의 생일이 성탄 일주일 전인 12월 18일(1707년)이었던 사실에서 찾기도 한다.
예수님의 탄생 묘사 장면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한 장면들이 종종 역사적 정확성과 거리를 보이는 이유는 강력한 상징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천사들은 목자들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라 말했지만 아기 예수님 인형은 종종 두 팔을 벌린 형상을 띄고 있다. 두 팔을 벌린 형상은 환영의 표시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구원을 받으라는 초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탄 묘사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나 나무, 우물 또한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다. “탄생 묘사 장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탄생 묘사 장면에 관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많은 연합감리교인들이 포사다라고 불리는 남미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 예수님의 탄생 여정을 상징화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연합감리교회 예배서에 따르면, 성탄절 전의 아홉 날은 “마리아가 그의 태에 예수님을 밴 채 살았던 아홉 달의 기간을 상징하며 따라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고 강조하는” 시기이다. 참여자들은 이것을 기억하면서 축제를 준비한 집을 향해 여정을 함께한다. 참여자 일행이 도착하면 문을 두드리고 성경에 기반한 예배가 시작된다. 참여자들은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밤에 요셉과 마리아에게 묵을 곳을 내어 준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우리 또한 예수님을 우리 삶 속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예배가 끝나면 피냐타와 음식을 나눈다.
요셉과 마리아의 여정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요셉이 언급되는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열여섯 절밖에 되지 않으며 그가 직접 말한 것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그에 관해 단지 두 가지 사실만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야곱이었고, 그는 공예가, 아마도 목공 장인이었다.
요셉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여타의 것들은 그의 약혼녀였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 전해준, 그녀가 예수님을 출산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에 그가 보인 대응으로부터 추론한 것들이다. 듣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소식이었겠지만, 이 순간에도 요셉은 고상하고 신실하게 행동한다. 그는 새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르심을 따라 요셉과 마리아가 걸어야만 했던 여행길 중 하나는 나사렛에서부터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까지의 여정이었다. 도보로 대략 100마일 정도인 이 여정은, 나귀의 도움을 받아도 9일에서 10일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Get Your Spirit in Shape 팟캐스트의 한 에피소드에서 아담 해밀턴 목사는 9개월 만삭 임산부가 그에게 했던 말을 나눈 적이 있다. “만약 내가 마리아였다면, 요셉은 절대로 무거운 저를 나귀에 올릴 수 없었을 거예요.”
빨간 냄비도 연합감리교회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성탄 준비 쇼핑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와 종소리를 만난다. 하지만 구세군이 감리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1865년 영국에서 구세군을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 노숙인, 주린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고자 했던 열정을 품었던 그는 사람들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선교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선교사업은 오늘날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굿윌(Goodwill Industries)도 연합감리교회와 비슷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굿윌 역시 감리교 목사였던 에드거 J 헴즈(Rev. Edgar J. Helms)에 의해 1902년 보스턴에서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원받은 물품을 고쳐 재판매하는 일을 위해 일자리가 필요했던 사람들을 고용하고 훈련했다.
*조 이오비노(Joe Iovino)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공보부의 UMC.org 담당 부서에서 일합니다. 이메일을 보내 연락하세요.
이 이야기의 영문판 기사는 2017년 12월 14일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