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운동의 선구자들: 벳지 도우 트웜블리

일러스트 전문가에 의해 재구성된 1839년의 뉴버리 신학교(버몬트주 뉴버리). 이 신학교는 후일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발전한다. 벳지 도우 트웜블리는 1837년 19세의 나이로 학교의 교사 및 “여성 사역" 지도자가 되었다. 원본 사진 제공: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그래픽: 로렌스 글래스,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일러스트 전문가에 의해 재구성된 1839년의 뉴버리 신학교(버몬트주 뉴버리). 이 신학교는 후일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발전한다. 벳지 도우 트웜블리는 1837년 19세의 나이로 학교의 교사 및 “여성 사역" 지도자가 되었다. 원본 사진 제공: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그래픽: 로렌스 글래스,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벳지 도우 트웜블리(1818-1900)는 여성과 남성 교육의 선구자로,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 태동기의 첫 번째 강좌 중 하나를 가르쳤고 여성 선교 사역을 후원한 지도자였다. 

벳지는 1818년 버몬트주 캐벗에서 존 G. 도우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1837년 19살의 나이로 그녀는 뉴햄프셔 및 버몬트 연회의 감리교 고등학교로 버몬트주 뉴버리에 새로 조직된 뉴버리 신학교의 교사 및 “여성 사역"의 지도자가 되었다. 

버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젊은 여성들만을 위한 문학회를 조직했다. 전미에서 최초로 조직된 여성 문학회였다. 여성들에게도 공교육 과정이 허용되었던 19세기 중반이었지만, 여성들이 있어야 할 적합한 “영역"은 가정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팽배해있던 시기였다. 이 문학회는 젊은 여성들이 “그들의 영역 너머로, 대담하고 주제넘게 나아가 신사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을 차지하려 한다"고 믿었던 이들 가운데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버몬트주 뉴버리 역사, 프레드릭 P. 웰스 저, 칼레도니안 출판사, 1902) 

같은 해 감리교 목회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일단의 젊은 남성들이 뉴버리 신학교의 한 남자 교수에게 접근하여, 목회후보생들이 잘 알고 있어야 했던 정신 철학에 관한 강의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교수는 다른 수업을 맡을 여력이 없는 상태였고, 결국 도우 여사가 그 수업을 가르치게 되었다. 1841년 이 과목을 비롯한 몇 개의 강의가 뉴버리 성경학교(Newbury Biblical Institute)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여성과 남성 모두를 가르치는 미국 최초의 감리교 신학 훈련 기관이었다. 이 학교는 1847년 General Methodist Biblical Institute로 이름을 바꿔 뉴햄프셔주 콩코드로 옮긴 뒤, 이후 보스턴으로 옮겨 오늘날의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발전하였다. 벳지 도우가 가르쳤던 정신 철학 강좌가 오늘날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감리교 신학교의 기원이 된 셈이다. 

벳지는 지속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여성 해외 선교사회(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를 조직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그녀의 영향력과 지도력에 대한 존경심은 특별히 1869년 5월에 있었던 회의에서 잘 드러났다. 교단 선교회 소속의 사람들이 보스턴으로 왔고, 여성들이 보유했던 자금의 관리를 남성 조직에 넘기도록 종용했다. 이에 벳지는 여성들이 그 자금에 대한 결정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안건을 냈다. 그녀의 제안이 통과되었고, 이로써 여성 해외 선교사회는 개신교 여성 선교 단체 중 최초로 자금에 대한 통제력을 보유한 단체가 되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유산은 연합감리교회 여성회(The United Methodist Women)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본 자료는 뉴잉글랜드연회의 역사편찬위원인 팻 톰슨 목사의 자문을 토대로, 연합감리교 공보부의 사역인 연합감리교회에 물어보세요(Ask The UMC)가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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